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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by 돈냄시 2022. 11. 21.
울음바다가 된 명장면

뜨거웠던 이슈 담담했던 스토리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2019년 10월에 관객을 만났다.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전부터 페미니즘이니, 젠더 갈등이니 등의 다양한 이슈들로 뉴스화 되면서 영화는 물론 배우 정유미까지 댓글 테러를 당하며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열어보면 아는 법. 논란 속에서도 당시 3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방을 했고 일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지지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사실 영화의 특성상 강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일부로 자극을 넣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그려지기를 바랐다." <스타포커스 인터뷰 중> 김도영 감독의 의도처럼 나도 이 영화가 담담하게 전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여성의 삶을 보면서 공감을 했고 어떤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김지영은 1982년 봄에 태어났으며 한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80년대생 여자들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를 부르는 다양한 호칭. 딸, 여보, 며느리, 엄마, 지영씨... 가정과 사회 어느 곳에서도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편히 쉴 수도 없으며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찾아온 우울증과 답답함이 빙의로 이어지는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대한민국 사회의 잘못된 의식과 가정에서 시작된 비극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뿌리 내려있는 남아선호 사상과 가부장제는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고 불편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지영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그녀와 언니는 남자인 동생과는 달리 할머니와 친척 어른들로부터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런 딸들의 아픔을 아는 어머니지만 누군가의 며느리이자 아내인 그녀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 하는 건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다 커서도 딸이 아픈 사실도 모른 채 아버지는 멀쩡한 아들의 보약 만을 지어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 고등학생인 소녀 지영은 버스까지 따라온 남성에게 스토킹을 당하게 된다. 아버지에게 다급하게 구원의 문자를 보냈지만 느긋하게 등장하는 덕분에 어떤 현명한 여자분이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해 준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치마가 짧다며 옷을 단정하게 입으라는 말을 하게 되고 딸 지영은 자신의 잘못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나는 이 부분이 정상인가 싶다.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하고 스토킹범을 잡아서 어떻게 해도 모자랄 판이지 않은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보는 시선을 가진 아버지. 사실 위와 같은 멘트는 남자인 나도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들으며 자라온 경험이 있다. 우리가 살아온 어린 시절은 좋아해서 괴롭히고 장난치는 것을 당연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도 남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우는 여학생에게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혹은 "네가 예뻐서..." 라며 폭력을 쉬쉬하기도 했다. 어른들의 잘못된 의식 때문에 어린 여학생은 그저 참고 넘겨야 했다. 지영이 아버지도 앞서 말한 선생님과 같다. 사랑하는 딸의 아픔과 비극은 아이러니하게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참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 = 우리의 이야기

나는 지영이 느끼는 답답함이 단순히 산후 우울증이 아니라고 본다. 어릴 때부터 참아왔던 불합리와 아픔이 결국 터진 것이다. 어디에도 편하게 말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남편과 가족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자 빙의를 통해 자신의 답답함을 풀고 세대를 아우르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 위의 장면을 <82년생 김지영>의 메시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명장면으로 꼽고 싶다. 당시 영화관에서 나도 이 장면에서 눈물을 머금었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지영의 아픈 소식을 들은 엄마는 집으로 찾아가 엄마가 도와줄 테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한다. 그때 지영은 할머니로 빙의해 어릴 적 엄마가 오빠들 뒷바라지하느라 미싱 일을 하며 고생하고 다쳤던 기억을 꺼내면서 오히려 엄마에게 위로를 전한다. 결국 이 작품은 주인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나의 엄마, 누나, 사랑하는 사람, 내 친구들의 인생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 엄마의 삶과 모습이 겹쳐지면서 슬픔과 미안함을 동시에 몰려왔다.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 이 말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 준 작품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 몰랐던 문제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할 당신과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가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되풀이되고 이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끝으로

지금도 명절에 남자들은 거실에 앉아서 TV를 보고 여자들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불편하게 바라보지 않는 이 사회가 안타깝다. 남자인 나는 같이 음식을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하려해도 "남자는 가만히 있어." , "외가에서는 일 하는 거 아니다." 등의 이상하고도 이해 안 되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나아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런 남편이 어디 있냐는 평을 받았던 남편 대현은 육아 휴직을 고민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고 사회 분위기도 이를 반겨하지 않는다. 설상 휴가가 성사(?)돼도 복귀하면 내 자리가 사라지거나 업무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내 지영은 출산과 동시에 경력이 단절되고 자연스레 독박 육아를 맡아야 한다. 아이를 데리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그녀를 보는 시선조차 곱지 않은 사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쉽지 않겠지만, 먼저 나부터 문제를 인지하고 고쳐 나가려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우리의 이야기가 점점 더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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